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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엄마’의 인생 2막 따라잡기

협동조합 잼터 체험강사 신계옥씨
» 1. 지난 20년간 외아들만 바라보고 살아온 ‘강남엄마’ 신계옥씨가 인생 2막을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지난 10월28일 비가 그친 서울 광진구 능동 서울어린이대공원은 가을 느낌이 완연했다. 일주일 넘게 전국을 뒤덮었던 미세먼지도 말끔히 가셨다. 양진유치원 어린이 8명은 오래간만에 이곳을 찾았다. 8월부터 ‘숲속 유치원’ 체험 프로그램에 매주 참여하고 있는데 지난주는 미세먼지 때문에 쉬었다. 한 학부모는 “오늘도 아침까지 비가 오니까 딸애가 ‘이번주도 신계옥 선생님 못 만나면 어떡하냐’고 걱정했다”고 말했다.

협동조합 잼터의 체험강사인 신계옥(52) 선생님이 나타나자 정작 아이들은 2주 만에 봐서 그런지 낯설어했다. 선생님이 “둘씩 손잡고 낙엽 보러 출발!” 외쳐도 재준이는 엄마와 떨어지기 힘들어했다. “나뭇잎 색깔이 지난번이랑 다르지. 어떻게 변했어? 응, 빨갛게 변했어. 노란색 나뭇잎도 많이 있네. 가장 마음에 드는 걸로 주워와 보자. 선생님은 벌레 먹어 구멍이 뻥 뚫린 나뭇잎을 찾아봐야지.” 재준이는 어느새 엄마를 잊고 나뭇잎 줍기에 여념이 없다. 낙엽을 찾아 돌아다니던 우진이는 바닥에 놓여 있던 나무막대를 집어들었다. “우진아, 그 막대기는 내려놓으면 좋겠어. 다른 친구 다칠까봐 걱정되지?” 신씨는 기자에게 “야외수업은 안전이 제일이라 사고가 날까 신경이 곤두선다”고 말했다. 낙엽을 주워 온 아이들은 선생님께 자랑하느라 열심이다. 선생님의 칭찬을 들을 때까지 나뭇잎을 들이밀었다.

20년간 외아들만 바라보며
잠원동서 ‘매니저 맘’ 생활하다
대학 입학 뒤 역할 공백에 당황

베이비부머 경력단절여성 뽑혀
유아 체험강사 하며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과 교감

누구 엄마 아닌 내 이름 찾아
군대 간 아들 염려·집착 떨쳐

우울증 염려하던 남편도 안심
“온가족이 자유롭고 행복해요”

2. 지난 10월28일 서울시 광진구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신씨가 양진유치원 어린이와 함께 ‘숲속 유치원’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이라 솔직해요. 선생님한테 예쁨 받고 싶어하고 눈을 마주치고 싶어해요. 그 마음이 느껴지니까 한번 더 눈이라도 마주치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려고 노력해요. 이렇게 교감하면 마음이 흐뭇해지면서 피로가 풀리죠.”

신씨는 지난해 9월 서울시 마을기업 지원사업인 ‘베이비부머 경력단절여성 체험강사 양성과정’에 뽑혀 협동조합 잼터에서 교육을 받아왔다.

“동기 14명 대부분 50대 중후반이고 제가 막내예요. 한 팀이 되어 내년 시행되는 자유학기제에 대비해 청소년의 진로교육을 준비하고 있어요. 자녀 대학 입학은 물론, 취직까지 시킨 분도 많아서 진로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연령대인 것 같아요. 진로교육을 준비하면서 국·영·수 입시에 쫓겨 아들의 진로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지 못했구나 후회를 했어요. 이렇게 다양한 직업이 있는 줄 알았다면 아들이 다양한 기회를 경험하고 학과도 자유롭게 선택하게 했을 것 같아요.”

신씨는 지난 20년간 외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다. 초등학교 진학에 맞춰 서초구 잠원동으로 이사하면서 소위 ‘강남엄마’가 됐다. 초등학생 때는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이들과 엄마들이 함께 어울렸다. ‘우리 동네 알기’ 교과과정에 ‘파전 만들어 나눠 먹기’가 나오면 같이 만들어 먹었다.

“잠원동은 압구정과 반포 사이에 끼여 있지만 강남 안에서 조금 다른 동네인 것 같아요. 작은 평수의 낡은 아파트에 오래 사는 분이 많아서 약간 시골 같은 정서가 있어요. 비 오면 부침개 잘 부치는 엄마 집에 모이고, 아침에 국 끓이면 필요한 엄마들과 나눠요. 아이 생일에는 자장면 열 그릇 배달시켜 큰 함지박에 풀어놓고 막 비벼서 나눠 먹기도 해요.”

신씨는 몇년 전 엄마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우스갯소리를 들려줬다. 압구정동, 대치동, 잠원동에 사는 강남 엄마의 하루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한 이야기다. 압구정 엄마는 아이에게 미국식 아침식사를 먹여 학교에 보낸 뒤 골프연습장에 가서 하교 시간에 맞춰 도우미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어 간식을 챙겨달라고 말한다. 대치동 엄마는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를 위해 12첩 반상을 준비하고 낮에는 선행학습을 공부한 뒤 방과 시간에 맞춰 유기농 간식을 준비한다. 반면 잠원동 엄마는 어제 먹다 남은 된장찌개에 밥을 말아 먹여 학교에 보낸 뒤 터미널 지하상가에서 ‘아이쇼핑’을 하고 분식집에서 산 떡볶이를 검은 봉지에 담아 집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딱 우리 얘기라며 다들 재미있어했어요. 조금 극단적이지만 우리 동네의 특색을 잘 살린 것 같아요. 가진 건 많지 않아도 아이에 대한 사랑은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이들은 잠원동을 싫어해요. 아들이 여자친구를 사귈 때 ‘여자친구랑 공원에 있던데’, ‘버스 타고 어디 가던데’ 식으로 이웃이 알려주니까 ‘동네에서 꼼짝할 수가 없다’고 투덜댔죠. 밤에 아이가 놀이터에서 혼자 쪼그리고 있는데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동네는 적어도 아닌 것 같아요.”

중고생 때는 집→학교→학원→집으로 아이를 데려다주는 ‘매니저’ 생활도 했다. 아들이 대학을 진학하자 할 일이 없어졌다. 20년 동안 아이 뒤꽁무니만 쫓아다녔고 24시간 비상대기조로 살아왔는데 갑작스런 역할의 공백에 당황했다. 아들에 대한 걱정만 늘어갔다. ‘취직은 어떻게 하지?’ ‘무슨 자격증을 따야 하지 않을까?’ 귀가가 늦어지면 술 마시고 어디 가서 누워 있지 않을까 걱정했다.

“지난 6월에 입대한 아들은 엄마가 너무 자기만 쳐다보고 있으니 불안했나 봐요. 남편도 말은 안 했지만 우울증 올까봐 걱정했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제 주위에도 아들이 군에 입대한 뒤 우울증을 앓는 분이 계시거든요. 그때 체험강사를 10년째 하고 있는 엄마가 잼터를 소개해줬어요.”

강사료는 수업 한번에 4만5000원인데 수업이 가장 많은 여름방학에도 100만원을 넘지 않아 돈을 바라보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20년간 누구 엄마로 살아왔지만 이제 자신의 이름을 찾는 도전을 즐기게 되었다.

“아들이 휴가를 나온다고 전화를 하면 예전 같으면 분명 부대까지 가서 데려오고 또 부대까지 바래다줬을 거예요.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껴 더 쉬게 해주고 싶어서요. 그러나 지금은 ‘응, 그래. 버스 타고 알아서 와’ 이래요. 아이에 대한 집착이나 지나친 염려도 줄어들고 여유로워진 것 같아요. 남편도 아들 군대 가면 자기를 조를까봐 걱정했는데, 혼자서 자유를 즐길 수 있어 좋아해요. 호호. 온 가족이 행복합니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 1. 지난 20년간 외아들만 바라보고 살아온 ‘강남엄마’ 신계옥씨가 인생 2막을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지난 10월28일 비가 그친 서울 광진구 능동 서울어린이대공원은 가을 느낌이 완연했다. 일주일 넘게 전국을 뒤덮었던 미세먼지도 말끔히 가셨다. 양진유치원 어린이 8명은 오래간만에 이곳을 찾았다. 8월부터 ‘숲속 유치원’ 체험 프로그램에 매주 참여하고 있는데 지난주는 미세먼지 때문에 쉬었다. 한 학부모는 “오늘도 아침까지 비가 오니까 딸애가 ‘이번주도 신계옥 선생님 못 만나면 어떡하냐’고 걱정했다”고 말했다.

협동조합 잼터의 체험강사인 신계옥(52) 선생님이 나타나자 정작 아이들은 2주 만에 봐서 그런지 낯설어했다. 선생님이 “둘씩 손잡고 낙엽 보러 출발!” 외쳐도 재준이는 엄마와 떨어지기 힘들어했다. “나뭇잎 색깔이 지난번이랑 다르지. 어떻게 변했어? 응, 빨갛게 변했어. 노란색 나뭇잎도 많이 있네. 가장 마음에 드는 걸로 주워와 보자. 선생님은 벌레 먹어 구멍이 뻥 뚫린 나뭇잎을 찾아봐야지.” 재준이는 어느새 엄마를 잊고 나뭇잎 줍기에 여념이 없다. 낙엽을 찾아 돌아다니던 우진이는 바닥에 놓여 있던 나무막대를 집어들었다. “우진아, 그 막대기는 내려놓으면 좋겠어. 다른 친구 다칠까봐 걱정되지?” 신씨는 기자에게 “야외수업은 안전이 제일이라 사고가 날까 신경이 곤두선다”고 말했다. 낙엽을 주워 온 아이들은 선생님께 자랑하느라 열심이다. 선생님의 칭찬을 들을 때까지 나뭇잎을 들이밀었다.

20년간 외아들만 바라보며
잠원동서 ‘매니저 맘’ 생활하다
대학 입학 뒤 역할 공백에 당황

베이비부머 경력단절여성 뽑혀
유아 체험강사 하며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과 교감

누구 엄마 아닌 내 이름 찾아
군대 간 아들 염려·집착 떨쳐

우울증 염려하던 남편도 안심
“온가족이 자유롭고 행복해요”

2. 지난 10월28일 서울시 광진구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신씨가 양진유치원 어린이와 함께 ‘숲속 유치원’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이라 솔직해요. 선생님한테 예쁨 받고 싶어하고 눈을 마주치고 싶어해요. 그 마음이 느껴지니까 한번 더 눈이라도 마주치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려고 노력해요. 이렇게 교감하면 마음이 흐뭇해지면서 피로가 풀리죠.”

신씨는 지난해 9월 서울시 마을기업 지원사업인 ‘베이비부머 경력단절여성 체험강사 양성과정’에 뽑혀 협동조합 잼터에서 교육을 받아왔다.

“동기 14명 대부분 50대 중후반이고 제가 막내예요. 한 팀이 되어 내년 시행되는 자유학기제에 대비해 청소년의 진로교육을 준비하고 있어요. 자녀 대학 입학은 물론, 취직까지 시킨 분도 많아서 진로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연령대인 것 같아요. 진로교육을 준비하면서 국·영·수 입시에 쫓겨 아들의 진로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지 못했구나 후회를 했어요. 이렇게 다양한 직업이 있는 줄 알았다면 아들이 다양한 기회를 경험하고 학과도 자유롭게 선택하게 했을 것 같아요.”

신씨는 지난 20년간 외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다. 초등학교 진학에 맞춰 서초구 잠원동으로 이사하면서 소위 ‘강남엄마’가 됐다. 초등학생 때는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이들과 엄마들이 함께 어울렸다. ‘우리 동네 알기’ 교과과정에 ‘파전 만들어 나눠 먹기’가 나오면 같이 만들어 먹었다.

“잠원동은 압구정과 반포 사이에 끼여 있지만 강남 안에서 조금 다른 동네인 것 같아요. 작은 평수의 낡은 아파트에 오래 사는 분이 많아서 약간 시골 같은 정서가 있어요. 비 오면 부침개 잘 부치는 엄마 집에 모이고, 아침에 국 끓이면 필요한 엄마들과 나눠요. 아이 생일에는 자장면 열 그릇 배달시켜 큰 함지박에 풀어놓고 막 비벼서 나눠 먹기도 해요.”

신씨는 몇년 전 엄마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우스갯소리를 들려줬다. 압구정동, 대치동, 잠원동에 사는 강남 엄마의 하루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한 이야기다. 압구정 엄마는 아이에게 미국식 아침식사를 먹여 학교에 보낸 뒤 골프연습장에 가서 하교 시간에 맞춰 도우미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어 간식을 챙겨달라고 말한다. 대치동 엄마는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를 위해 12첩 반상을 준비하고 낮에는 선행학습을 공부한 뒤 방과 시간에 맞춰 유기농 간식을 준비한다. 반면 잠원동 엄마는 어제 먹다 남은 된장찌개에 밥을 말아 먹여 학교에 보낸 뒤 터미널 지하상가에서 ‘아이쇼핑’을 하고 분식집에서 산 떡볶이를 검은 봉지에 담아 집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딱 우리 얘기라며 다들 재미있어했어요. 조금 극단적이지만 우리 동네의 특색을 잘 살린 것 같아요. 가진 건 많지 않아도 아이에 대한 사랑은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이들은 잠원동을 싫어해요. 아들이 여자친구를 사귈 때 ‘여자친구랑 공원에 있던데’, ‘버스 타고 어디 가던데’ 식으로 이웃이 알려주니까 ‘동네에서 꼼짝할 수가 없다’고 투덜댔죠. 밤에 아이가 놀이터에서 혼자 쪼그리고 있는데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동네는 적어도 아닌 것 같아요.”

중고생 때는 집→학교→학원→집으로 아이를 데려다주는 ‘매니저’ 생활도 했다. 아들이 대학을 진학하자 할 일이 없어졌다. 20년 동안 아이 뒤꽁무니만 쫓아다녔고 24시간 비상대기조로 살아왔는데 갑작스런 역할의 공백에 당황했다. 아들에 대한 걱정만 늘어갔다. ‘취직은 어떻게 하지?’ ‘무슨 자격증을 따야 하지 않을까?’ 귀가가 늦어지면 술 마시고 어디 가서 누워 있지 않을까 걱정했다.

“지난 6월에 입대한 아들은 엄마가 너무 자기만 쳐다보고 있으니 불안했나 봐요. 남편도 말은 안 했지만 우울증 올까봐 걱정했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제 주위에도 아들이 군에 입대한 뒤 우울증을 앓는 분이 계시거든요. 그때 체험강사를 10년째 하고 있는 엄마가 잼터를 소개해줬어요.”

강사료는 수업 한번에 4만5000원인데 수업이 가장 많은 여름방학에도 100만원을 넘지 않아 돈을 바라보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20년간 누구 엄마로 살아왔지만 이제 자신의 이름을 찾는 도전을 즐기게 되었다.

“아들이 휴가를 나온다고 전화를 하면 예전 같으면 분명 부대까지 가서 데려오고 또 부대까지 바래다줬을 거예요.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껴 더 쉬게 해주고 싶어서요. 그러나 지금은 ‘응, 그래. 버스 타고 알아서 와’ 이래요. 아이에 대한 집착이나 지나친 염려도 줄어들고 여유로워진 것 같아요. 남편도 아들 군대 가면 자기를 조를까봐 걱정했는데, 혼자서 자유를 즐길 수 있어 좋아해요. 호호. 온 가족이 행복합니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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