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뉴스»콘텐츠

바느질·설거지가 여인의 도리? 이런 자막 ‘유감’

(MBC)이 지난 8일 방송한 여군 체험 예능 프로그램 에서, 걸그룹 에프엑스의 멤버 엠버가 설거지하는 장면에 “설거지 또한 여인의 도리이니라”란 자막이 나온다. 방송화면 갈무리

엄마는 집안일, 아빠는 바깥일?
예능프로 성 역할 고정관념 활용
“시대 흐름 역행…자제할 필요” 지적
“요리하는 남자 되레 편견 깨” 반론걸그룹 에프엑스의 멤버 엠버는 데뷔 때부터 ‘중성적’ 이미지로 대중에게 다가갔다. 엠버는 지난달 방송을 시작한 (문화방송) 여군 특집편에 출연 중이다. 제작진은 방송을 계기로 엠버에게 발견한 ‘여성다움’을 이른바 ‘반전 매력’이라 이름 붙이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런데 이 ‘반전’의 이유라는 게 엠버의 바느질 장면이다.

지난 1일 방송분에서 엠버는 소대장 명령으로 짧은 시간 안에 군복 상의에 주기표를 바느질 하는 임무를 여유롭게 해냈다. 그러자 제작진은 화면에 “천생 여자” 또는 “규수”라는 자막을 집어넣었다. “바느질은 여인의 도리”라는 자막까지 곁들였다.

제작진의 이러한 ‘반전 매력 발굴’은 지난 8일 방송에서도 이어졌다. 엠버가 밥을 먹은 뒤 설거지를 하는 장면에서 “설거지 또한 여인의 도리이니라”라는 자막이 붙었다. 지난 방송의 바느질 장면을 다시 가져와, 엠버에게 고운 여성 한복을 특수효과로 입혀주고 “규수의 탄생”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에 대해 여성민우회 이윤소 활동가는 “바느질은 굳이 성별을 나눌 필요가 없다. 남성 군인들도 직접 바느질을 한다. 제작진이 남성·여성의 외모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탓에 억지로 ‘여성다움’을 부각한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MBC)이 지난 8일 방송한 여군 체험 예능 프로그램 에서, 걸그룹 에프엑스의 멤버 엠버의 바느질 모습에 “바느질 실력을 선보인 천생 여자”란 자막이 붙었다. 방송화면 갈무리

예능에서 여성성·남성성을 인위적으로 부각하거나 성역할 고정관념을 활용하는 건 흔한 일이다. 그런데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앞서 나가는 프로그램에서조차도 자막은 구태의연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청률은 물론 내용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어촌 체험 프로 (티브이엔)의 경우, 제작진은 남성 출연자인 차승원, 유해진, 손호준의 활약에 ‘엄마-아빠-아들’의 가족 드라마 콘셉트를 입혔다. 차승원은 요리, 유해진은 물고기 잡기, 손호준은 각종 보조 노동을 도맡는다. 남자인 차승원이 집안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방송이 ‘요리 등 가사노동은 여성의 일’이란 편견을 깨고 있지만, 자막은 여전히 ‘엄마는 집안일, 아빠는 바깥일’이란 편견은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언론정보학 박사)는 “차승원의 요리 실력이 돋보이는데, 이를 굳이 ‘아줌마’, ‘엄마’, ‘안사람’이란 표현에 빗댈 필요가 있는지는 고민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예능 프로는 촬영이 끝난 뒤 더해지는 자막이나 배경음악, 특수효과 등 편집을 통해 만들어지는 ‘웃음’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큰 웃음’을 주지도 못하면서 시대에 ‘역행’하는 자막은 제작진 차원에서 사용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이종임 운영위원은 “(문화방송)이 대표적인데, 예능 프로 자막은 ‘또 하나의 출연진’이나 다름 없다. 따라서 제작진은 리얼리티 프로에서 자막이 시청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김석현 책임피디(CP)는 “모든 세대를 겨냥하는 프로일 수록 보편적 공감대를 얻어야 하므로, 우리 부모님 세대가 대부분 살아왔던 방식, 즉 아버지는 바깥일하고 어머니는 가족의 식사를 책임졌던 모습으로 재미와 공감을 얻고 있다고 본다”며 “대표적인 ‘상남자’ 이미지의 배우가 요리와 집안일을 웬만한 주부들보다 더 잘해내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전통적 성역할이란 보수적 가치관을 극복하고 남녀평등에 긍정적 역할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MBC)이 지난 8일 방송한 여군 체험 예능 프로그램 에서, 걸그룹 에프엑스의 멤버 엠버가 설거지하는 장면에 “설거지 또한 여인의 도리이니라”란 자막이 나온다. 방송화면 갈무리

엄마는 집안일, 아빠는 바깥일?
예능프로 성 역할 고정관념 활용
“시대 흐름 역행…자제할 필요” 지적
“요리하는 남자 되레 편견 깨” 반론걸그룹 에프엑스의 멤버 엠버는 데뷔 때부터 ‘중성적’ 이미지로 대중에게 다가갔다. 엠버는 지난달 방송을 시작한 (문화방송) 여군 특집편에 출연 중이다. 제작진은 방송을 계기로 엠버에게 발견한 ‘여성다움’을 이른바 ‘반전 매력’이라 이름 붙이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런데 이 ‘반전’의 이유라는 게 엠버의 바느질 장면이다.

지난 1일 방송분에서 엠버는 소대장 명령으로 짧은 시간 안에 군복 상의에 주기표를 바느질 하는 임무를 여유롭게 해냈다. 그러자 제작진은 화면에 “천생 여자” 또는 “규수”라는 자막을 집어넣었다. “바느질은 여인의 도리”라는 자막까지 곁들였다.

제작진의 이러한 ‘반전 매력 발굴’은 지난 8일 방송에서도 이어졌다. 엠버가 밥을 먹은 뒤 설거지를 하는 장면에서 “설거지 또한 여인의 도리이니라”라는 자막이 붙었다. 지난 방송의 바느질 장면을 다시 가져와, 엠버에게 고운 여성 한복을 특수효과로 입혀주고 “규수의 탄생”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에 대해 여성민우회 이윤소 활동가는 “바느질은 굳이 성별을 나눌 필요가 없다. 남성 군인들도 직접 바느질을 한다. 제작진이 남성·여성의 외모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탓에 억지로 ‘여성다움’을 부각한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MBC)이 지난 8일 방송한 여군 체험 예능 프로그램 에서, 걸그룹 에프엑스의 멤버 엠버의 바느질 모습에 “바느질 실력을 선보인 천생 여자”란 자막이 붙었다. 방송화면 갈무리

예능에서 여성성·남성성을 인위적으로 부각하거나 성역할 고정관념을 활용하는 건 흔한 일이다. 그런데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앞서 나가는 프로그램에서조차도 자막은 구태의연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청률은 물론 내용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어촌 체험 프로 (티브이엔)의 경우, 제작진은 남성 출연자인 차승원, 유해진, 손호준의 활약에 ‘엄마-아빠-아들’의 가족 드라마 콘셉트를 입혔다. 차승원은 요리, 유해진은 물고기 잡기, 손호준은 각종 보조 노동을 도맡는다. 남자인 차승원이 집안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방송이 ‘요리 등 가사노동은 여성의 일’이란 편견을 깨고 있지만, 자막은 여전히 ‘엄마는 집안일, 아빠는 바깥일’이란 편견은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언론정보학 박사)는 “차승원의 요리 실력이 돋보이는데, 이를 굳이 ‘아줌마’, ‘엄마’, ‘안사람’이란 표현에 빗댈 필요가 있는지는 고민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예능 프로는 촬영이 끝난 뒤 더해지는 자막이나 배경음악, 특수효과 등 편집을 통해 만들어지는 ‘웃음’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큰 웃음’을 주지도 못하면서 시대에 ‘역행’하는 자막은 제작진 차원에서 사용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이종임 운영위원은 “(문화방송)이 대표적인데, 예능 프로 자막은 ‘또 하나의 출연진’이나 다름 없다. 따라서 제작진은 리얼리티 프로에서 자막이 시청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김석현 책임피디(CP)는 “모든 세대를 겨냥하는 프로일 수록 보편적 공감대를 얻어야 하므로, 우리 부모님 세대가 대부분 살아왔던 방식, 즉 아버지는 바깥일하고 어머니는 가족의 식사를 책임졌던 모습으로 재미와 공감을 얻고 있다고 본다”며 “대표적인 ‘상남자’ 이미지의 배우가 요리와 집안일을 웬만한 주부들보다 더 잘해내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전통적 성역할이란 보수적 가치관을 극복하고 남녀평등에 긍정적 역할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Next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