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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락의 초딩 이코노미] 고루 잘살자면서 복지는 왜 싫어하니?

김경락기자의 초딩 이코노미를 소개합니다.

김경락기자의 초딩 이코노미는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눈높이에서 경제 현상의 이면을 설명해주는 '친절한' 한겨레 기사입니다. 격주로 소개되고 있는 김경락기자의 초딩 이코노미 기사를 베이비트리 부모가 알아야할 뉴스에서 만나보세요. 김경락 경제부 기자는 세종특별자치시에서 기획재정부를 출입하며 재정·금융 분야를 다루고 있으며, 알려지지 않은 소식을 전하는 것만큼이나 알기 쉽게 경제 현상을 소개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쓴 책으로 (사계절), 번역한 책으로 (메디치미디어)가 있습니다.

[한겨레 토요판] 김경락의 초딩 이코노미
(19) 경제 문제의 이중 잣대 


이번엔 좀 불편한 이야기를 하려 해. 어른들의 이중성 혹은 어리석음을 다루려 하거든. 물론 조금 어려울 수 있어. 반년 가까이 2주에 한 번꼴로 이 코너에 글을 썼지만, 경제 이야기를 쉽게 쓰기는 어렵네. 이해해줘.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면 좋겠고, 곰곰이 생각해봐주면 더 흐뭇할 것 같아. 무슨 이야기인데 이렇게 뜸을 들이냐고?

키워드부터 하나하나 짚어볼게. 모두 5개야. 빚(부채), 복지, 세금, 경기, 양극화가 그 주인공이지. 어떤 단어는 익숙할 테고, 또 어떤 낱말은 생소할 거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말도 있지? 신문과 같은 언론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밥 먹는 식탁에서도 도마에 오르는 주제이기도 해. 여하튼 이 5개 키워드를 꿰면, ‘경제를 좀 알아’라며 폼 잡을 수 있어.

경제 분야 기자 생활을 10년 넘게 한 나도 이 주제와 관련해서 무수히 많은 기사를 썼지. 그런데 말야. 이 5가지 주제는 모두 긴밀히 연결돼 있는데도, 독자들의 반응이 주제별로 많이 다르더라는 거야. 콩나물국을 끓이기 위해선 모두들 ‘콩나물’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를 하면서도 해물찜 만들 때 ‘콩나물’이 필요하다고 하면 ‘뜨악’하는 식이지. 그래서 불편한 진실, 혹은 이중성이라고 나름대로 과감한 표현을 해봤어. 말이 길었네. 이제 슬슬 들어가볼까?

양극화 정책 반대 찾기 어려워

너희들도 쉽게 느낄 수 있는 주제이지. 양극화 말이야.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간의 소득 격차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잖아? 같은 학교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지만 친구들마다 살림살이가 많이 다를 거야. 불과 50년 전만 해도 도시락 반찬은 대략 비슷했어. 고작 달걀 프라이나 소시지를 반찬으로 들고 오면 부잣집 친구였지. 내 기억도 그래.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라 불렀어)를 다닐 때 참치캔을 반찬으로 가져오는 친구가 참 부러웠어. 당시 돈으로 900원쯤 했지, 아마도.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년간 무척 빨리 성장했지만, 양극화란 불청객도 머리를 디밀었어.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요즘엔 그 누구도 양극화가 다들 문제라고 할 지경이야. 또 양극화를 다들 줄여야 한다고 말하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양극화는 불가피한 일로 치부하고, 양극화를 줄이기 위한 정책엔 반대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거든. 지금은 그런 사람들도 만나기 참 어렵더라고.

여하튼 내가 양극화를 다룬 기사를 쓰면 대부분 공감하는 반응이야. 댓글도 그렇고. 가령 비정규직 직원 임금이 대기업 직원 임금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거나 별로 하는 일도 없어 보이는 재벌그룹 회장의 연봉이 일반 직원 연봉보다 수백배나 많다는 사실을 다룬 기사에는 반응이 ‘좋아요’ 일색이야. 그래서 난 다짐했지. 양극화의 현상을 짚었으니 이젠 그 해법을 다뤄봐야겠다고.

‘경기가 나쁘다’는 기사도 최근 몇년간 부쩍 썼어. 기업 투자는 줄고 소비도 늘지 않고 있거든. 엄마, 아빠의 호주머니도 많이 가벼워졌을 거야. 일자리는 또 어때? 언니, 오빠들이 죽어라 취업 준비를 해도 번듯한 일자리를 얻기 힘든 거 너희도 잘 알 거야. 학교 졸업하면 바로 취업하고, 첫 월급으로 어머니, 아버지한테 빨간색 내복 사드리는 게 불과 20년 전만 해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어. 이제는 다 옛말이 됐지. 요즘 언니, 오빠들은 피시방이다 호프집이다 햄버거집이다 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청춘을 보내고 있어. 안타까운 일이야.

한해 두해도 아니고 불경기가 6~7년 지속되다 보니 신조어마저 등장했어. ‘장기 저성장’. 전문가들이 붙인 말이지. 궁금했어. 여기서 말하는 ‘장기’의 끝이 언제인지. 전문가들의 답은 이래. “끝을 알 수 없는 저성장이 지속될 수 있다.” 말이 좋아 저성장이지 지금과 같은 나쁜 경기가 앞으로도 쭉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거야.

여하튼 내가 나쁜 경기 상황에 대해서 기사를 쓰면 또 공감한다는 반응이 넘쳐요. 온라인 기사에 달린 댓글은 물론이거니와 내 개인 전자우편으로도 갖가지 사연들이 쏟아져 들어오지. 그중 어느 한 통의 우편에도 ‘경기가 좋은데 왜 기사를 이따위로 썼냐’는 질책은 못 봤어.

그래서 난 또 생각했지. 이 기나긴 어둠의 터널에서 하루빨리 빠져나오는 방법을 취재해야겠다고. 기사를 써서 조금이라도 빨리 우리 경제가 활기를 띨 수 있도록 도움이 되길 바라는 순수한(?) 마음이었지. 모두들 경기를 살려야 한다고 해서이기도 하고.

양극화를 줄이는 한 방법은 복지를 늘리는 거야. 월급이 적은 사람에게 나라에서 이런저런 수당 같은 보조금을 주면 아무래도 사람들 간의 소득 차이는 줄어들 거 아니겠어? 어르신들에게 주는 기초연금이나 월급이 적은 가계에 세금을 깎아주는 근로장려금 같은 것들을 팍팍 늘리면 양극화 문제는 분명 줄어들 수 있을 거야.

너희가 다니는 학교도 마찬가지지. 교과서는 물론 모두가 보는 참고서를 나라에서 지급하면 가난한 친구들도 참고서값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을 거 아니겠어. 아 맞다. 요즘엔 급식이 있지. 급식도 하나의 복지야. 가능하다면 급식뿐만 아니라 학교생활에 들어가는 다른 돈도 나라에서 주면 참 좋겠다 싶어.

양극화·복지·세금·부채·경기 등
경제 키워드로 본 ‘불편한 진실’
양극화 해소엔 대부분 동의하나
복지 확대엔 ‘복지병’ 운운 반대
재원 마련 위한 증세는 더 싫어

경기 불황 지속될 가능성 높은데
나라빚 내 경기 부양하는 것도 “노”
이런 이중성은 정부 신뢰 부재 때문
공평하게 걷어 잘 쓰는지 못 믿어
20대 국회서 신뢰 회복되길 기대

복지 강조하지만 나랏빚 느는 것 반대

공교롭게도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견줘 복지 수준이 매우 낮아.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그 수준이 참 형편없을 정도야. 나라 경제 규모는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데, 복지 수준은 30위에도 턱걸이하기 힘들지. 그래서 난 다른 나라와 복지 수준을 비교해서 복지를 늘려야 한다는 취지를 담은 기사를 썼지.

그런데 이번에는 반응이 엇갈리더라고. ‘그래 맞아. 복지를 확충해야지’란 의견도 많지만, 또 ‘복지 좋아하다가 거덜난 나라들 모르냐’는 힐난도 많더라고. 양극화를 줄여야 한다는 주제에 대해선 다들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를 위해 복지를 늘리자는 데는 ‘복지병’까지 운운하며 반대하는 사람들 참 많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생각이 짧았더라고. 복지가 아무리 좋아도 돈이 없으면 못 하지. 공짜란 없는 거 아니겠어? 이 쉬운 걸 내가 깜빡했다니. 그러고 보니 “증세 없는 복지”를 앞세운 박근혜 대통령이 외려 더 이상하게 다가오더라고요. 난 실수할 수 있지만, 대통령이 착각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박 대통령이나 그의 참모들이 ‘머리’가 있는 사람들인가 싶더라고. 아니나 다를까 언젠가부터 ‘꼼수 증세’란 말이 나오더라.

세금을 더 안 걷겠다고 선언은 했으니 내놓고 증세는 못 하고 갖가지 명분을 붙이는 방식으로 슬그머니 세금을 더 걷더라는 거지. 엄마, 아빠 중에 담배 피우는 분 계시지? 그러면 더 잘 알 거예요. 지난해 1월에 담뱃값이 무려 2000원이나 뛰었는데, 그 이유가 담배에 붙는 세금을 정부가 많이 올려서였어. 그때 정부가 뭐랬는지 알아?

“국민 건강을 위해 담뱃값을 올렸다. 세금을 더 걷는 게 목적이 아니다.” 여러분이 보기에도 너무 속 보이는 변명이지?

여하튼 정부가 그런 꼼수를 부린 것이 마뜩잖고 또 세금 더 안 걷는다고 한 약속을 정부 스스로 깨버린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불가피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 왜냐고? 양극화도 줄이고 복지를 늘려야 할 돈이 필요하니까!

이 비슷한 일이 또 있었어. 2013년에 정부가 소득세와 관련된 법을 바꿨어요. 이때도 ‘세금제도 합리화’란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은 부자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는 게 목적이었어. 담뱃값 올리는 것은 흡연자 주머니를 턴 거지만 이 제도개편은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는 거니깐 양극화를 줄이는 데 더 도움이 된다 싶었어.

이런 생각을 담아 기사를 썼지. 어떤 일이 벌어졌냐고? 아주 난리가 났어. 거의 비난에 가까운 반응 일색이었지. 세금을 더 내게 된 부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가난한 듯한 사람들도 분노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더라고. 양극화를 줄이고 복지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 내 마음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고. 마음이 많이 아팠지. 여튼 한 가지 확인한 사실은 세금 더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양극화는 줄여야겠고, 그래서 복지는 늘려야겠다. 공짜 복지는 없으니 세금을 더 걷어야 하지 않을까.’ 여기까지가 내가 지난해 초까지 생각한 거야. 독자의 반응을 요약하면 대략 이래. ‘양극화 줄이는 데는 동의한다. 복지는 늘리면 좋은데 공짜 복지는 안 된다. 그렇다고 세금 더 내는 건 결사반대다.’ 내가 얼마나 난감했을지 상상이 가?

그즈음에 또다른 돌파구가 보이더라고. 나라가 세금을 걷는 대신에 빚을 내면 되는 거야. 양극화를 줄이기 위해 또 복지를 늘리기 위해서 말이지. 게다가 빚을 내서 정부가 돈을 많이 쓰면 그 나쁘다는 경기도 살릴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다 싶었어. 나쁜 경기도 살리고 양극화도 줄이고. 이렇게 기사를 썼어.

아이고. 또 잘못 짚은 거야. 나름 묘수를 찾았구나 싶었는데, 또 독자들 반응은 더 나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부가 빚내는 걸 또 싫어하더라고. 나랏빚이 늘어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반응이 많았어. 복지를 강조하던 야당 정치인들도 ‘정부가 나라 곳간을 파탄으로 내몰고 있다’고 목청을 높이더라고.

무너진 신뢰 회복하는 게 정치

여기서 물러설 수야 있나. 더 공부를 해서 새로운 논리를 만들었지. 나랏빚이 그간 늘긴 늘었지만 다른 나라에 견주면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고. 이건 정말정말 사실이거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경제가 매우 나빴던 터라, 이들 나라는 우리보다 더 많은 빚을 내어 경기를 살렸던 거야. 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평균적으로 우리나라의 두 배는 훌쩍 넘더라고.

이런 이야기에도 반응은 영 시원치 않더라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금 더 내는 것도 싫고 나라가 빚내는 것은 더더욱 싫지만, 그래도 복지 확대는 절반 정도 찬성하고, 양극화 해소는 대부분 지지한다는 사실을 난 배웠어.

어때? 어른들 참 이중적이지. 양극화 줄이자면서 세금 내기 싫고 나라가 빚내는 것도 싫다고 하니 말야. 너무 답답한 나머지 내가 평소에 멘토라 여기는 선생님께 이런 상황에 대해 여쭤봤어. 그분의 한마디.

“우리나라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 그래. 속고만 너무 오랫동안 살아왔던 거지.” 그 순간 머리에서 번쩍하며 뭔가 스쳐 지나가더라고. 내가 무엇을 놓친 것인지 말야.

그래 맞아. 바로 신뢰야. 정부가 세금을 더 걷는다고 할 때 공평하게 걷는지, 또 걷은 세금으로 제대로 돈을 쓰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많은 의구심을 갖고 있어. 나랏빚을 낸다고 하면 빚낸 돈으로 엉뚱한 데 돈을 쓸까 걱정인 거지. 너희도 알지? 힘있고 부자인 사람들이 세금을 떼먹고 있고, 정부가 제대로 이를 찾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또 4대강 공사를 한답시고 수십조원을 쓴 게 우리 정부잖아.

맞아. 신뢰를 한번 잃은 사람이 아무리 맞는 소리를 해도 사람들은 듣지 않는 법이지. 양치기 소년 말을 누가 믿겠어. 난 조그마한 기대가 하나 있어. 이번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어서 정치권이 새로 판이 짜였거든. 이번에 뽑힌 국회의원들이 일을 잘해서 무너진 신뢰를 다시 회복하길 바라는 거야. 이건 바로 정치지.


이번엔 좀 불편한 이야기를 하려 해. 어른들의 이중성 혹은 어리석음을 다루려 하거든. 물론 조금 어려울 수 있어. 반년 가까이 2주에 한 번꼴로 이 코너에 글을 썼지만, 경제 이야기를 쉽게 쓰기는 어렵네. 이해해줘.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면 좋겠고, 곰곰이 생각해봐주면 더 흐뭇할 것 같아. 무슨 이야기인데 이렇게 뜸을 들이냐고?

키워드부터 하나하나 짚어볼게. 모두 5개야. 빚(부채), 복지, 세금, 경기, 양극화가 그 주인공이지. 어떤 단어는 익숙할 테고, 또 어떤 낱말은 생소할 거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말도 있지? 신문과 같은 언론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밥 먹는 식탁에서도 도마에 오르는 주제이기도 해. 여하튼 이 5개 키워드를 꿰면, ‘경제를 좀 알아’라며 폼 잡을 수 있어.

경제 분야 기자 생활을 10년 넘게 한 나도 이 주제와 관련해서 무수히 많은 기사를 썼지. 그런데 말야. 이 5가지 주제는 모두 긴밀히 연결돼 있는데도, 독자들의 반응이 주제별로 많이 다르더라는 거야. 콩나물국을 끓이기 위해선 모두들 ‘콩나물’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를 하면서도 해물찜 만들 때 ‘콩나물’이 필요하다고 하면 ‘뜨악’하는 식이지. 그래서 불편한 진실, 혹은 이중성이라고 나름대로 과감한 표현을 해봤어. 말이 길었네. 이제 슬슬 들어가볼까?

양극화 정책 반대 찾기 어려워

너희들도 쉽게 느낄 수 있는 주제이지. 양극화 말이야.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간의 소득 격차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잖아? 같은 학교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지만 친구들마다 살림살이가 많이 다를 거야. 불과 50년 전만 해도 도시락 반찬은 대략 비슷했어. 고작 달걀 프라이나 소시지를 반찬으로 들고 오면 부잣집 친구였지. 내 기억도 그래.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라 불렀어)를 다닐 때 참치캔을 반찬으로 가져오는 친구가 참 부러웠어. 당시 돈으로 900원쯤 했지, 아마도.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년간 무척 빨리 성장했지만, 양극화란 불청객도 머리를 디밀었어.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요즘엔 그 누구도 양극화가 다들 문제라고 할 지경이야. 또 양극화를 다들 줄여야 한다고 말하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양극화는 불가피한 일로 치부하고, 양극화를 줄이기 위한 정책엔 반대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거든. 지금은 그런 사람들도 만나기 참 어렵더라고.

여하튼 내가 양극화를 다룬 기사를 쓰면 대부분 공감하는 반응이야. 댓글도 그렇고. 가령 비정규직 직원 임금이 대기업 직원 임금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거나 별로 하는 일도 없어 보이는 재벌그룹 회장의 연봉이 일반 직원 연봉보다 수백배나 많다는 사실을 다룬 기사에는 반응이 ‘좋아요’ 일색이야. 그래서 난 다짐했지. 양극화의 현상을 짚었으니 이젠 그 해법을 다뤄봐야겠다고.

‘경기가 나쁘다’는 기사도 최근 몇년간 부쩍 썼어. 기업 투자는 줄고 소비도 늘지 않고 있거든. 엄마, 아빠의 호주머니도 많이 가벼워졌을 거야. 일자리는 또 어때? 언니, 오빠들이 죽어라 취업 준비를 해도 번듯한 일자리를 얻기 힘든 거 너희도 잘 알 거야. 학교 졸업하면 바로 취업하고, 첫 월급으로 어머니, 아버지한테 빨간색 내복 사드리는 게 불과 20년 전만 해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어. 이제는 다 옛말이 됐지. 요즘 언니, 오빠들은 피시방이다 호프집이다 햄버거집이다 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청춘을 보내고 있어. 안타까운 일이야.

한해 두해도 아니고 불경기가 6~7년 지속되다 보니 신조어마저 등장했어. ‘장기 저성장’. 전문가들이 붙인 말이지. 궁금했어. 여기서 말하는 ‘장기’의 끝이 언제인지. 전문가들의 답은 이래. “끝을 알 수 없는 저성장이 지속될 수 있다.” 말이 좋아 저성장이지 지금과 같은 나쁜 경기가 앞으로도 쭉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거야.

여하튼 내가 나쁜 경기 상황에 대해서 기사를 쓰면 또 공감한다는 반응이 넘쳐요. 온라인 기사에 달린 댓글은 물론이거니와 내 개인 전자우편으로도 갖가지 사연들이 쏟아져 들어오지. 그중 어느 한 통의 우편에도 ‘경기가 좋은데 왜 기사를 이따위로 썼냐’는 질책은 못 봤어.

그래서 난 또 생각했지. 이 기나긴 어둠의 터널에서 하루빨리 빠져나오는 방법을 취재해야겠다고. 기사를 써서 조금이라도 빨리 우리 경제가 활기를 띨 수 있도록 도움이 되길 바라는 순수한(?) 마음이었지. 모두들 경기를 살려야 한다고 해서이기도 하고.

양극화를 줄이는 한 방법은 복지를 늘리는 거야. 월급이 적은 사람에게 나라에서 이런저런 수당 같은 보조금을 주면 아무래도 사람들 간의 소득 차이는 줄어들 거 아니겠어? 어르신들에게 주는 기초연금이나 월급이 적은 가계에 세금을 깎아주는 근로장려금 같은 것들을 팍팍 늘리면 양극화 문제는 분명 줄어들 수 있을 거야.

너희가 다니는 학교도 마찬가지지. 교과서는 물론 모두가 보는 참고서를 나라에서 지급하면 가난한 친구들도 참고서값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을 거 아니겠어. 아 맞다. 요즘엔 급식이 있지. 급식도 하나의 복지야. 가능하다면 급식뿐만 아니라 학교생활에 들어가는 다른 돈도 나라에서 주면 참 좋겠다 싶어.

양극화·복지·세금·부채·경기 등
경제 키워드로 본 ‘불편한 진실’
양극화 해소엔 대부분 동의하나
복지 확대엔 ‘복지병’ 운운 반대
재원 마련 위한 증세는 더 싫어

경기 불황 지속될 가능성 높은데
나라빚 내 경기 부양하는 것도 “노”
이런 이중성은 정부 신뢰 부재 때문
공평하게 걷어 잘 쓰는지 못 믿어
20대 국회서 신뢰 회복되길 기대

복지 강조하지만 나랏빚 느는 것 반대

공교롭게도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견줘 복지 수준이 매우 낮아.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그 수준이 참 형편없을 정도야. 나라 경제 규모는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데, 복지 수준은 30위에도 턱걸이하기 힘들지. 그래서 난 다른 나라와 복지 수준을 비교해서 복지를 늘려야 한다는 취지를 담은 기사를 썼지.

그런데 이번에는 반응이 엇갈리더라고. ‘그래 맞아. 복지를 확충해야지’란 의견도 많지만, 또 ‘복지 좋아하다가 거덜난 나라들 모르냐’는 힐난도 많더라고. 양극화를 줄여야 한다는 주제에 대해선 다들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를 위해 복지를 늘리자는 데는 ‘복지병’까지 운운하며 반대하는 사람들 참 많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생각이 짧았더라고. 복지가 아무리 좋아도 돈이 없으면 못 하지. 공짜란 없는 거 아니겠어? 이 쉬운 걸 내가 깜빡했다니. 그러고 보니 “증세 없는 복지”를 앞세운 박근혜 대통령이 외려 더 이상하게 다가오더라고요. 난 실수할 수 있지만, 대통령이 착각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박 대통령이나 그의 참모들이 ‘머리’가 있는 사람들인가 싶더라고. 아니나 다를까 언젠가부터 ‘꼼수 증세’란 말이 나오더라.

세금을 더 안 걷겠다고 선언은 했으니 내놓고 증세는 못 하고 갖가지 명분을 붙이는 방식으로 슬그머니 세금을 더 걷더라는 거지. 엄마, 아빠 중에 담배 피우는 분 계시지? 그러면 더 잘 알 거예요. 지난해 1월에 담뱃값이 무려 2000원이나 뛰었는데, 그 이유가 담배에 붙는 세금을 정부가 많이 올려서였어. 그때 정부가 뭐랬는지 알아?

“국민 건강을 위해 담뱃값을 올렸다. 세금을 더 걷는 게 목적이 아니다.” 여러분이 보기에도 너무 속 보이는 변명이지?

여하튼 정부가 그런 꼼수를 부린 것이 마뜩잖고 또 세금 더 안 걷는다고 한 약속을 정부 스스로 깨버린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불가피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 왜냐고? 양극화도 줄이고 복지를 늘려야 할 돈이 필요하니까!

이 비슷한 일이 또 있었어. 2013년에 정부가 소득세와 관련된 법을 바꿨어요. 이때도 ‘세금제도 합리화’란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은 부자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는 게 목적이었어. 담뱃값 올리는 것은 흡연자 주머니를 턴 거지만 이 제도개편은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는 거니깐 양극화를 줄이는 데 더 도움이 된다 싶었어.

이런 생각을 담아 기사를 썼지. 어떤 일이 벌어졌냐고? 아주 난리가 났어. 거의 비난에 가까운 반응 일색이었지. 세금을 더 내게 된 부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가난한 듯한 사람들도 분노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더라고. 양극화를 줄이고 복지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 내 마음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고. 마음이 많이 아팠지. 여튼 한 가지 확인한 사실은 세금 더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양극화는 줄여야겠고, 그래서 복지는 늘려야겠다. 공짜 복지는 없으니 세금을 더 걷어야 하지 않을까.’ 여기까지가 내가 지난해 초까지 생각한 거야. 독자의 반응을 요약하면 대략 이래. ‘양극화 줄이는 데는 동의한다. 복지는 늘리면 좋은데 공짜 복지는 안 된다. 그렇다고 세금 더 내는 건 결사반대다.’ 내가 얼마나 난감했을지 상상이 가?

그즈음에 또다른 돌파구가 보이더라고. 나라가 세금을 걷는 대신에 빚을 내면 되는 거야. 양극화를 줄이기 위해 또 복지를 늘리기 위해서 말이지. 게다가 빚을 내서 정부가 돈을 많이 쓰면 그 나쁘다는 경기도 살릴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다 싶었어. 나쁜 경기도 살리고 양극화도 줄이고. 이렇게 기사를 썼어.

아이고. 또 잘못 짚은 거야. 나름 묘수를 찾았구나 싶었는데, 또 독자들 반응은 더 나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부가 빚내는 걸 또 싫어하더라고. 나랏빚이 늘어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반응이 많았어. 복지를 강조하던 야당 정치인들도 ‘정부가 나라 곳간을 파탄으로 내몰고 있다’고 목청을 높이더라고.

무너진 신뢰 회복하는 게 정치

여기서 물러설 수야 있나. 더 공부를 해서 새로운 논리를 만들었지. 나랏빚이 그간 늘긴 늘었지만 다른 나라에 견주면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고. 이건 정말정말 사실이거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경제가 매우 나빴던 터라, 이들 나라는 우리보다 더 많은 빚을 내어 경기를 살렸던 거야. 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평균적으로 우리나라의 두 배는 훌쩍 넘더라고.

이런 이야기에도 반응은 영 시원치 않더라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금 더 내는 것도 싫고 나라가 빚내는 것은 더더욱 싫지만, 그래도 복지 확대는 절반 정도 찬성하고, 양극화 해소는 대부분 지지한다는 사실을 난 배웠어.

어때? 어른들 참 이중적이지. 양극화 줄이자면서 세금 내기 싫고 나라가 빚내는 것도 싫다고 하니 말야. 너무 답답한 나머지 내가 평소에 멘토라 여기는 선생님께 이런 상황에 대해 여쭤봤어. 그분의 한마디.

“우리나라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 그래. 속고만 너무 오랫동안 살아왔던 거지.” 그 순간 머리에서 번쩍하며 뭔가 스쳐 지나가더라고. 내가 무엇을 놓친 것인지 말야.

그래 맞아. 바로 신뢰야. 정부가 세금을 더 걷는다고 할 때 공평하게 걷는지, 또 걷은 세금으로 제대로 돈을 쓰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많은 의구심을 갖고 있어. 나랏빚을 낸다고 하면 빚낸 돈으로 엉뚱한 데 돈을 쓸까 걱정인 거지. 너희도 알지? 힘있고 부자인 사람들이 세금을 떼먹고 있고, 정부가 제대로 이를 찾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또 4대강 공사를 한답시고 수십조원을 쓴 게 우리 정부잖아.

맞아. 신뢰를 한번 잃은 사람이 아무리 맞는 소리를 해도 사람들은 듣지 않는 법이지. 양치기 소년 말을 누가 믿겠어. 난 조그마한 기대가 하나 있어. 이번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어서 정치권이 새로 판이 짜였거든. 이번에 뽑힌 국회의원들이 일을 잘해서 무너진 신뢰를 다시 회복하길 바라는 거야. 이건 바로 정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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