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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 대학생, 경제독립을 하다

며칠 전, 아들이 환한 얼굴로 황급히 안방으로 들어온다. 그리곤 “아빠, 아빠, 이 옷 어때요?”라며 입고 있는 흰색 라운드티를 가르킨다. 평소, 옷을 가지고 호들갑을 떨 아들이 아닌 것을 알기에 ‘왠 옷이냐?“고 물었더니 누나와 오전에 약속을 하고 저녁에 백화점에서 만나 6만원을 주고 구입했다고 한다. 그 모습이 꽤 자랑스러운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에게 강단있고 직설적인 누나는 그동안 꽤나 어려운 상대였다. 하지만 누나에게 선물을 받은 옷으로 인하여 그 동안의 부정적인 감정이 호의적으로 변했다. 또한 학생 신분의 누나에게 받은 선물은 아들에게 또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내는 딸이 사준 신발을 택배로 받았다. 물론 1만원 대의 금액이었지만 아내의 발에 딱 맞는 신발이었다. 사실, 아내의 신발을 사주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다. 지난 1년 동안 5군데 이상을 함께 가서 사주었다. 그러나 구입 후, 다시 바꾸고, 발에 맞지 않아서 구입하지 못하면서 결국 실패했다. 그 이유는 크기가 맞으면 발이 아프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실을 정확히 알고 딸은 인터넷에서 구입했고, 신어 본 아내는 발이 편하자 크게 만족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그린 자화상 

딸이 독립했다. 경제적인 독립을 했다. 그것도 대학교 4학년 학생 신분으로 독립했다. 올해 2월까지는 매달 얼마의 돈을 주었지만 3월부터는 달라고 하지 않는다. 물론 아빠의 능력을 무시한 듯도 하지만 그렇게 싫지만은 않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 꿈을 찾고 성장시키는 꿈 점검표를 초등학교 6학년부터 10년 이상을 했으며, 둘째는 딸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게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꿈점검표는 지난 칼럼에 썼기 때문에 여기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꿈이 성장하는 과정을 말하고자 한다.

우선, 아빠의 교육관을 살펴보자. 그동안 아이들에게 ‘공부하라’, ‘열심히해라’, ‘노력하라’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많이 하는 말이란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였다. 오히려 시험 기간에 아이에게 다가가서 “딸아, 아빠랑 놀러가자”라고 했다. 그러면 딸은 “아빠, 내일 시험인데 어떻게 놀러가요”라고 타박을 했다. 딸은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했다. 3살 때부터 매일 1~2시간씩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아빠는 이것을 버리지 않고 아이의 앨범에 차곡차곡 스크랩을 해주었다. 10살 때는 10권의 사진앨범을 만들었다. 그것은 늘 거실 중앙에 있었다. 그리고 친구나 친척이 오면 늘 이것을 본다. 그러면 한마디씩 한다. “규리가 그림을 잘 그리는구나” 그러나 이 때, 딸의 표정을 밝지 않다. 그것은 과거의 그림으로서 보여주기 챙피하다는 로고스다. 딸은 속으로 “고모, 지금은 그 것보다 훨씬 더 잘그려요. 그 그림은 챙피해요”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커다란 자극이며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런 딸이 5학년이 되어 36개의 행복 쿠폰을 개발했다. 그것은 아빠와 아이가 서로 1개씩 쿠폰을 주고 받으면서 상대방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으로서 아이들과 1년 정도 재미있게 놀았다. 그리고 이것은 6학년 때, 어린이 동아에 찾아가서 인터뷰를 했고, 프론트 기사로 실렸다. 그리고 중1이 되어 아빠의 저서에 그것이 부록으로 실리면서 호평을 받았다. 이어서 중학교 1학년 9월부터 문화일보에 아빠가 글을 쓰고 딸의 삽화가 실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딸의 그림 실력은 괄목상대하게 발전했다. 이 때부터 중2 때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그림 그리는데 투자했다. 아마 자신의 그림이 일간지에 실리자 자부심이 동기 부여가 된 듯 하다. 2학년 여름, 딸의 방을 보니 A4지에 칼라로 그림 일러스트 수 십 장이 벽에 스카치테이프로 붙여놓았다. 좀 어지러웠다. 그래서 이것을 모아서 코팅을 한 후, 주었더니 벽에 모자이크 벽화처럼 붙여놓았다. 딸은 지금도 말하길, 그 때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중3, 아빠의 3번째 저서에 딸이 삽화를 그리기 전, 편집장은 딸에게 점심을 사주고, 사무실에 함께 들렀다. 그리고 갑자기 딸에게 자신을 그려보라고 한다. 그러자 딸은 그녀를 한 번 슬쩍 보곤 1분만에 그려서 건네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깔깔거린다. 동시에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바가지 머리의 그림이 판박이였기 때문이다. 딸의 주특기는 일필휘지인데 한 번에 실기 테스트를 합격했다. 그 후, 딸은 아빠의 10권의 저서에서 5권에 삽화를 그렸다. 때론, 1달 반의 방학 내내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때는 자신이 그린 책이 나와도 친구에게 주기조차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대학생이 되면서 친구는 물론 교수님에게도 선물로 주었다. 딸은 결국 대학교 1학년부터 동급 최강의 경력과 함께 실력자가 되었다. 그러자 여기저기 친구들이 그림 부탁을 받았고, 가볍게 툭툭 처리했다. 이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프로들에게서 부탁이 오기 시작했다. 책임감이 강한 딸은 똑 부러지게 일을 처리했다. 그러자 더 많은 일들이 오기 시작했다. 딸은 주경야독이란 말과 같이, 학교 과제를 하느라, 그리고 일을 하느라 우리 집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경제적인 독립을 했다.

요즘, 캥거루족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했는데도 불구하고 취업을 하지 못하니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더구나 30대 중, 후반인데도 부모에게 얹혀살고 있다. 이건 아니다. 이건 부모들도 노후대책을 포기하란 말과 같다. 부모의 역할이란 아이가 20살이 되면 독립준비를 시켜주어야 한다. 아프리카 세렝게티의 치타의 사례를 보자. 보통 2~5마리의 새끼를 낳고 어미가 혼자 키운다. 그리고 어느 정도 크면 어미의 사냥을 하는 모습을 곁에서 여러 번 본다. 다음은 부모가 잡은 먹이를 가지고 사냥 연습을 한다. 마지막으로 새끼들이 혼자 사냥을 성공한다. 그러면 그 다음 날, 어미는 아무런 말도 없이 새끼의 곁을 떠난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어미의 역할이란 결국 자식의 홀로서기다.

그동안 우리의 잘못된 선택이란 공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믿음이었다. 공부만 잘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가고, 멋진 배우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우리의 현실을 살펴보면 아이의 소질과 재능과 개성을 알고 키워주려는 노력은 차선책이 되었고 폄하되었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양육과 교육이 그렇게 힘이 들었다. 지금도 내가 나를 생각하면 나란 존재는 이 시대의 아웃사이더였다. 시대의 포플리즘대로 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고, 나의 방식대로 아이를 키웠다. 그런데 그 종착점은 아이의 독립이란 사실이며, 그러기 위하여 먼저 아이가 경제적인 독립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래서 12년간의 꿈점검표를 통하여 자신의 인생 좌표를 알게 했으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게 했다. 아무리 노력하는 사람이라도 좋아서 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겠는가? 어쨌든, 그동안 두 아이를 키우면서 별로 힘들이지 않고 키웠다. 이만하면 괞찮은 인생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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