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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는 과학이 아닙니다. 철학입니다

» 한겨레 자료사진

임산부를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 가서 “요즘 임산부(姙者)는 이상한 것을 먹고, 차가운 곳에 앉아서…그 기르는 도리를 지키지 못하여…”라고 임산부들의 식생활 주의사항을 말한다면, 좀 고리타분한 스타일의 한의사가 하는 의례히 하는 말이라고는 생각될 수는 있어도 전혀 시대착오적인 썰렁한 말로 들리진 않을 것이다. 사실 이 글은 약 200년 전에 쓰인 태교 분야에서 너무도 유명한 “태교신기”라는 책에서 그 당시 임산부들의 행동을 걱정하는 대목이다. 어쩌면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어른들도 이런 말을 하셨을 것이다. 

자연과학의 발달로 인체의 신비를 많이 풀리고 있지만, 새로운 내용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선조들의 지혜를 다시금 확인하는 수준에 머무르는 대표적인 분야가 ‘태교’이다. 그래서 좋은 태교를 위해서 과학적 발견에 의한 새로운 지식보다 어쩌면 한번은 들어봤었을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따르는 것이 가장 좋은 비결이 된다. 특히 우리나라 전통적인 태교법은 세계적으로 탁월한 혜안을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사람의 나이를 따질 때 엄마의 뱃속에 있는 시기까지 감안해서 태어나면 바로 한 살로 쳐주지 않는가.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 시기도 먹고 자고 학습할 수 있는 시기로 인식해서 태어나자마자 한 살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출생 이후 시간만을 나이로 인정해주는 다른 나라의 개념에서 본다면, 엄마 뱃속에 있는 임신 기간은 태아가 그러한 태아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인식을 기본으로 뱃속에 있는 태아의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

자~ 태교 이야기 꺼내니 좀 걱정스러워 하는 산모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태교는 여성에게 뭔가 불편감을 주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실제 임상에서도 그런 느낌을 갖는 산모를 만나기도 했었다. 비유를 하자면, 한약은 먹고 싶으나 가려야 할 음식도 많고, 조심해야 하는 것도 많아서 차라리 한약을 먹지 말아야겠다고 말하는 환자분이 느낄 수 있는 그런 불편함 같다. (주의해야하는 음식 때문에 귀찮아서 한약치료의 좋은 효능을 포기하지는 말자 ㅎㅎ.) 이 경우처럼 태교는 필요한 건 잘 알지만, 어찌 보면 태교방법으로 강조되는 것들이 산모에게 무작정 절제하고, 조심하고, 먹고 싶은 것 못 먹게 규제하기 때문에 태교를 아예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현대인의 생활방식에서 보면 어쩌면 그런 불편함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대 태교와 관련된 내용들을 보면 태교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생각보다는 태교방법에 너무 치중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종의 반감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태교의 철학을 이해해야지, 그 태교의 방법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앗, 갑자기 철학이라는 단어를 쓰고 나니 왠지 찔리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철학을 학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행동을 결정하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보자.)

태교는 교육학에 속할까?, 발생학에 속할까?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가자.

요즘 태교관련 서적들을 살펴보면, 영재를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태교를 포장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옛 선조들도 태교는 왕실이나 양반가문에서 중요시되었기 때문에 영특함이나 총명함에 대한 내용도 강조한 면이 있지만, 단순히 아이의 학습능력만 강조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 출산 시 건강한 아이를 낳아서 튼튼하게 자라게 하는 발생학적 내용이었을까? 물론 영아 사망률이 높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당연히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태교는 임신부터 출산에 임하는 자세, 태아를 대하는 철학이었다. 인간이 착한 성품을 지닐 것이냐, 악한 성품을 지닐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이 태교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았다. 단순히 건강이나 총명함 뿐만 아니라 착한 심성까지 기르는 것이 태교이다. 

출산 후 교육으로 이루어지는 줄 알았던 인간의 성품, 기질, 재능 등 근본 바탕이 임신 중 산모의 마음가짐, 몸가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음식만 잘 가려먹고, 책을 열심히 읽는 것보다 이러한 태교 철학의 중요성을 알고, 부모가 임신을 위해 바르고 안정된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요즘 애들의 교육 문제를 이야기 할 때 누구나 공감하는 점이지만 인성 교육의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는 약점이다. 그 해결책에 대한 힌트를 옛 선인들의 지혜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태교 철학을 바로 세우는 것이 현재 교육의 약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태교신기” 에 너무나도 멋진 글이 나온다. “아비 낳음과 어미의 기름과 스승의 가르침은 모두가 한가지이다. 의술을 잘 하는 사람은 아직 병이 들지 않았을 때 다스리고, 잘 가르치는 사람은 태어나기 전에 가르친다. 그러므로, 스승의 십년 가르침이 어미가 잉태하여 열 달 기르는 것만 같지 못하고, 어미의 열 달 기름은 아비의 하루 낳는 것만 같지 못하다.” 이 글의 첫 구절인 ‘아비(아버지)는 날 낳으시고, 어미(어머니)는 날 기르시고’ 라는 문장은 사자소학(四字小學)의 첫 소절이기도 하다. (사자소학에서 가장 처음 나오는 글이 “부생아신(父生我身), 모국오신(母鞠吾身)”이다. 바로 아비는 나를 낳으시고, 어미는 나를 기르신다는 뜻이다. 이 문장을 옛날 어린이들의 첫 한자 교재인 사자소학의 제일 처음에 둔 것은 지금의 내가 있게 해주신 부모님의 고마움을 이성적으로 따지기 전에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뜻을 태아 때부터 항상 자연스럽게 인식한다면, 요즘 간혹 들리는 부모 자식 간에 생기는 패륜적 사건들은 없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제일 강조한 것은 바로 아비, 아버지의 임신에 관한 마음가짐과 생활을 바르게 하라는 것이다. 물론 이게 가부장적인 관점에서 남자의 중요성을 말한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임의 원인에도 남성 원인이 반을 차지하지만 왠지 여성의 문제만 우선시 되는 사회적 편견의 경향이 있는 것처럼,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겨지는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서 특별히 강조하려고 한 의도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버지 태교에 있어서도 남자의 몸에 병이 있을 때 잠자리를 하지 말라고 하는 육체적 건강에 대한 언급도 있으나, 무엇보다 아내에게 공경을 다하고 예를 갖추는 마음가짐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아내가 존중 받고, 사랑을 받아야 태아의 마음도 안정되고 태교의 성공의 열쇠가 되는 것이다. 태교는 절대로 음식을 제한하거나 생활을 괴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자유롭고 방만한 생활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무조건 기피할 게 아닌, 조상님들의 마음가짐을 배우고 따라야하는 태교의 철학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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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를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 가서 “요즘 임산부(姙者)는 이상한 것을 먹고, 차가운 곳에 앉아서…그 기르는 도리를 지키지 못하여…”라고 임산부들의 식생활 주의사항을 말한다면, 좀 고리타분한 스타일의 한의사가 하는 의례히 하는 말이라고는 생각될 수는 있어도 전혀 시대착오적인 썰렁한 말로 들리진 않을 것이다. 사실 이 글은 약 200년 전에 쓰인 태교 분야에서 너무도 유명한 “태교신기”라는 책에서 그 당시 임산부들의 행동을 걱정하는 대목이다. 어쩌면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어른들도 이런 말을 하셨을 것이다. 

자연과학의 발달로 인체의 신비를 많이 풀리고 있지만, 새로운 내용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선조들의 지혜를 다시금 확인하는 수준에 머무르는 대표적인 분야가 ‘태교’이다. 그래서 좋은 태교를 위해서 과학적 발견에 의한 새로운 지식보다 어쩌면 한번은 들어봤었을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따르는 것이 가장 좋은 비결이 된다. 특히 우리나라 전통적인 태교법은 세계적으로 탁월한 혜안을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사람의 나이를 따질 때 엄마의 뱃속에 있는 시기까지 감안해서 태어나면 바로 한 살로 쳐주지 않는가.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 시기도 먹고 자고 학습할 수 있는 시기로 인식해서 태어나자마자 한 살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출생 이후 시간만을 나이로 인정해주는 다른 나라의 개념에서 본다면, 엄마 뱃속에 있는 임신 기간은 태아가 그러한 태아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인식을 기본으로 뱃속에 있는 태아의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

자~ 태교 이야기 꺼내니 좀 걱정스러워 하는 산모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태교는 여성에게 뭔가 불편감을 주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실제 임상에서도 그런 느낌을 갖는 산모를 만나기도 했었다. 비유를 하자면, 한약은 먹고 싶으나 가려야 할 음식도 많고, 조심해야 하는 것도 많아서 차라리 한약을 먹지 말아야겠다고 말하는 환자분이 느낄 수 있는 그런 불편함 같다. (주의해야하는 음식 때문에 귀찮아서 한약치료의 좋은 효능을 포기하지는 말자 ㅎㅎ.) 이 경우처럼 태교는 필요한 건 잘 알지만, 어찌 보면 태교방법으로 강조되는 것들이 산모에게 무작정 절제하고, 조심하고, 먹고 싶은 것 못 먹게 규제하기 때문에 태교를 아예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현대인의 생활방식에서 보면 어쩌면 그런 불편함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대 태교와 관련된 내용들을 보면 태교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생각보다는 태교방법에 너무 치중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종의 반감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태교의 철학을 이해해야지, 그 태교의 방법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앗, 갑자기 철학이라는 단어를 쓰고 나니 왠지 찔리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철학을 학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행동을 결정하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보자.)

태교는 교육학에 속할까?, 발생학에 속할까?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가자.

요즘 태교관련 서적들을 살펴보면, 영재를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태교를 포장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옛 선조들도 태교는 왕실이나 양반가문에서 중요시되었기 때문에 영특함이나 총명함에 대한 내용도 강조한 면이 있지만, 단순히 아이의 학습능력만 강조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 출산 시 건강한 아이를 낳아서 튼튼하게 자라게 하는 발생학적 내용이었을까? 물론 영아 사망률이 높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당연히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태교는 임신부터 출산에 임하는 자세, 태아를 대하는 철학이었다. 인간이 착한 성품을 지닐 것이냐, 악한 성품을 지닐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이 태교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았다. 단순히 건강이나 총명함 뿐만 아니라 착한 심성까지 기르는 것이 태교이다. 

출산 후 교육으로 이루어지는 줄 알았던 인간의 성품, 기질, 재능 등 근본 바탕이 임신 중 산모의 마음가짐, 몸가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음식만 잘 가려먹고, 책을 열심히 읽는 것보다 이러한 태교 철학의 중요성을 알고, 부모가 임신을 위해 바르고 안정된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요즘 애들의 교육 문제를 이야기 할 때 누구나 공감하는 점이지만 인성 교육의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는 약점이다. 그 해결책에 대한 힌트를 옛 선인들의 지혜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태교 철학을 바로 세우는 것이 현재 교육의 약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태교신기” 에 너무나도 멋진 글이 나온다. “아비 낳음과 어미의 기름과 스승의 가르침은 모두가 한가지이다. 의술을 잘 하는 사람은 아직 병이 들지 않았을 때 다스리고, 잘 가르치는 사람은 태어나기 전에 가르친다. 그러므로, 스승의 십년 가르침이 어미가 잉태하여 열 달 기르는 것만 같지 못하고, 어미의 열 달 기름은 아비의 하루 낳는 것만 같지 못하다.” 이 글의 첫 구절인 ‘아비(아버지)는 날 낳으시고, 어미(어머니)는 날 기르시고’ 라는 문장은 사자소학(四字小學)의 첫 소절이기도 하다. (사자소학에서 가장 처음 나오는 글이 “부생아신(父生我身), 모국오신(母鞠吾身)”이다. 바로 아비는 나를 낳으시고, 어미는 나를 기르신다는 뜻이다. 이 문장을 옛날 어린이들의 첫 한자 교재인 사자소학의 제일 처음에 둔 것은 지금의 내가 있게 해주신 부모님의 고마움을 이성적으로 따지기 전에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뜻을 태아 때부터 항상 자연스럽게 인식한다면, 요즘 간혹 들리는 부모 자식 간에 생기는 패륜적 사건들은 없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제일 강조한 것은 바로 아비, 아버지의 임신에 관한 마음가짐과 생활을 바르게 하라는 것이다. 물론 이게 가부장적인 관점에서 남자의 중요성을 말한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임의 원인에도 남성 원인이 반을 차지하지만 왠지 여성의 문제만 우선시 되는 사회적 편견의 경향이 있는 것처럼,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겨지는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서 특별히 강조하려고 한 의도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버지 태교에 있어서도 남자의 몸에 병이 있을 때 잠자리를 하지 말라고 하는 육체적 건강에 대한 언급도 있으나, 무엇보다 아내에게 공경을 다하고 예를 갖추는 마음가짐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아내가 존중 받고, 사랑을 받아야 태아의 마음도 안정되고 태교의 성공의 열쇠가 되는 것이다. 태교는 절대로 음식을 제한하거나 생활을 괴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자유롭고 방만한 생활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무조건 기피할 게 아닌, 조상님들의 마음가짐을 배우고 따라야하는 태교의 철학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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