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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닫고 들어가는 아이

» 한겨레 자료사진

 

여섯 살 민지가 두 살 아래 동생과 인형놀이를 하고 있다. 조용히 잘 노는가 했더니 어느 새 투닥거리기 시작한다. 가만히 보니 두 아이가 서로 같은 인형을 갖겠다고 우기는 것이다.

“이거 내가 가질래.” 둘째가 칭얼거린다.

“지난 번에도 네가 이거 가졌잖아. 이번엔 내가 할 거야.” 평소에 동생한테 양보를 잘 하던 민지가 오늘은 웬일인지 지지 않고 맞선다.

“싫어. 내가 할거라고. 언니 나빠!”

“흥, 너랑 안 놀아. 만날 네 맘대로만 하려고 하고…” 동생이 울음을 터뜨린다. 그 광경을 보던 민지 엄마가 한 마디 한다.

“민지야. 동생이 좀 갖고 놀겠다는데 언니가 좀 양보하면 어때서 그래?”

“엄마는 만날 동생 편만 들고… “ 민지 얼굴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금새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탁 닫는다. 내가 너무 심했나 싶어 따라 들어가려는데 어느 새 문을 잠근 모양이다. 몇 번 이름을 불렀지만 민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심했나? 평소에 양보를 잘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너무 마음을 몰라줬네. 문까지 잠그고 들어가다니 나 때문에 정말 상처받았나 봐. 어떡하지?” 잠긴 있는 문 앞에 선 민지 엄마의 마음은 한 없이 무겁기만 했다.

엄마가 화장실에만 가도 그 앞을 지키던 어린 아이가 어느 날 혼자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근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삐친 것 같기도 하고, 어느 새 커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나 하는 의문도 든다. 이런 일을 겪는 엄마의 마음은 여러 가지 감정으로 복잡하다. 아이가 나를 거부하는 것 같은 생각에 서운하기도 했다가 얼마나 마음이 상했으면 저럴까 가슴 안쓰러워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

양육자와의 애착이 가장 중요하던 유아기에 아이는 엄마와 떨어지면 불안을 느낀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성장하면서 분리불안을 극복하게 되면 아이는 점차 엄마와의 접촉이 줄어들어도 안정된 가운데 생활할 수 있게 된다. 엄마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엄마와 가졌던 애착의 경험이 아이의 내면에 내재화되면서 외부에 대상이 없어도 스스로의 감정을 달랠 수 있을 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가 힘들 때는 항상 엄마가 달래준다. 아플 때, 배고플 때, 화가 날 때, 슬플 때 등. 그러나 성장하는 아이를 언제까지나 엄마가 옆에서 달래줄 수는 없다. 화가 나도 참아야 할 때가 있고, 슬퍼도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가야 하는 게 성장한 사람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시기부터 아이들은 서서히 자기의 감정을 스스로 달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문을 닫고 들어간다는 것은 우선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달래기 시작했다는 징표로 받아들이는 게 맞다. 엄마에 대한 불만,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맞지만 그래도 분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마에게 의존하는 아이는 의도적으로 엄마와 떨어지기 어렵다. 이젠 힘든 상황에서 혼자 일정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만큼 아이가 컸다는 신호가 바로 혼자 있으려는 행동이다.

때로 아이들은 관심 받기 위해 고립을 선택하기도 한다. 잠겨진 문으로 아이를 계속 부르고, 문을 두드리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 아이는 그런 반응을 얻기 위해 문울 닫고 들어가기도 한다. 아이가 문을 닫고 들어갈 때마다 엄마가 과도하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아이는 관심이라고 받아들여 관심을 받고 싶을 때마다 같은 행동을 반복할 수도 있다. 관심 받고자 할 때 다른 사람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방법은 그리 좋은 방법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아이가 문을 닫고 들어가면 일정 시간 기다려주고, 감정이 가라앉을만한 때 조용히 달래주면 된다.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혼을 내는 것은 아이가 자기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데 지장을 줄 수도 있다. 내 아이지만 감정은 아이만의 것이라는 것, 성장한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잠겨있는 문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은 여유로워질 것이다.

» 한겨레 자료사진

 

여섯 살 민지가 두 살 아래 동생과 인형놀이를 하고 있다. 조용히 잘 노는가 했더니 어느 새 투닥거리기 시작한다. 가만히 보니 두 아이가 서로 같은 인형을 갖겠다고 우기는 것이다.

“이거 내가 가질래.” 둘째가 칭얼거린다.

“지난 번에도 네가 이거 가졌잖아. 이번엔 내가 할 거야.” 평소에 동생한테 양보를 잘 하던 민지가 오늘은 웬일인지 지지 않고 맞선다.

“싫어. 내가 할거라고. 언니 나빠!”

“흥, 너랑 안 놀아. 만날 네 맘대로만 하려고 하고…” 동생이 울음을 터뜨린다. 그 광경을 보던 민지 엄마가 한 마디 한다.

“민지야. 동생이 좀 갖고 놀겠다는데 언니가 좀 양보하면 어때서 그래?”

“엄마는 만날 동생 편만 들고… “ 민지 얼굴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금새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탁 닫는다. 내가 너무 심했나 싶어 따라 들어가려는데 어느 새 문을 잠근 모양이다. 몇 번 이름을 불렀지만 민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심했나? 평소에 양보를 잘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너무 마음을 몰라줬네. 문까지 잠그고 들어가다니 나 때문에 정말 상처받았나 봐. 어떡하지?” 잠긴 있는 문 앞에 선 민지 엄마의 마음은 한 없이 무겁기만 했다.

엄마가 화장실에만 가도 그 앞을 지키던 어린 아이가 어느 날 혼자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근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삐친 것 같기도 하고, 어느 새 커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나 하는 의문도 든다. 이런 일을 겪는 엄마의 마음은 여러 가지 감정으로 복잡하다. 아이가 나를 거부하는 것 같은 생각에 서운하기도 했다가 얼마나 마음이 상했으면 저럴까 가슴 안쓰러워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

양육자와의 애착이 가장 중요하던 유아기에 아이는 엄마와 떨어지면 불안을 느낀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성장하면서 분리불안을 극복하게 되면 아이는 점차 엄마와의 접촉이 줄어들어도 안정된 가운데 생활할 수 있게 된다. 엄마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엄마와 가졌던 애착의 경험이 아이의 내면에 내재화되면서 외부에 대상이 없어도 스스로의 감정을 달랠 수 있을 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가 힘들 때는 항상 엄마가 달래준다. 아플 때, 배고플 때, 화가 날 때, 슬플 때 등. 그러나 성장하는 아이를 언제까지나 엄마가 옆에서 달래줄 수는 없다. 화가 나도 참아야 할 때가 있고, 슬퍼도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가야 하는 게 성장한 사람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시기부터 아이들은 서서히 자기의 감정을 스스로 달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문을 닫고 들어간다는 것은 우선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달래기 시작했다는 징표로 받아들이는 게 맞다. 엄마에 대한 불만,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맞지만 그래도 분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마에게 의존하는 아이는 의도적으로 엄마와 떨어지기 어렵다. 이젠 힘든 상황에서 혼자 일정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만큼 아이가 컸다는 신호가 바로 혼자 있으려는 행동이다.

때로 아이들은 관심 받기 위해 고립을 선택하기도 한다. 잠겨진 문으로 아이를 계속 부르고, 문을 두드리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 아이는 그런 반응을 얻기 위해 문울 닫고 들어가기도 한다. 아이가 문을 닫고 들어갈 때마다 엄마가 과도하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아이는 관심이라고 받아들여 관심을 받고 싶을 때마다 같은 행동을 반복할 수도 있다. 관심 받고자 할 때 다른 사람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방법은 그리 좋은 방법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아이가 문을 닫고 들어가면 일정 시간 기다려주고, 감정이 가라앉을만한 때 조용히 달래주면 된다.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혼을 내는 것은 아이가 자기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데 지장을 줄 수도 있다. 내 아이지만 감정은 아이만의 것이라는 것, 성장한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잠겨있는 문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은 여유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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