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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악당이라고 불러야 하는 순간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산적의 딸 로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일론 비클란드 그림, 이진영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1999)

간혹 어린이 문학을 오해하는 이들을 만난다. 그럴 때마다 적잖이 놀란다. 얼마 전 읽은 글을 전하면 “소설은 삶이 기대와 다르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하거나, 운명에 패배하는 삶의 고통을” 그린다. 반면 “동화는 삶의 거칠고 날카로우며 복잡한 면들을 부드럽고 단순하게 다듬”어 준다. 고로 소설은 “고통으로 가득 찬 삶과 대면”할 수 있도록 이끌고, “동화는 삶을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가공”한다.

대개 동화라고 하면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본 이미지를 바로 대입한다. 그런 연유로 동화는 복잡한 삶의 본질과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이를 도식화, 단순화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삶의 고통과 인간의 민낯을 생생하게 그리는 소설이 있고 이를 외면하는 소설이 있듯이 동화 역시 그렇다. 다만 동화는 어린이들을 위한 언어로 말하고 그 시절의 특징을 반영할 뿐이다.

동화가 유치하다고 생각한다면 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삐삐 롱 스타킹’으로 널리 알려진 린드그렌이 1981년 마지막으로 쓴 작품이다. 모든 문학의 경계를 넘어서는 걸작이다. 강인하고 용감한 여성의 이야기이자 적대적인 집안의 아들딸이 사랑하는 이야기이고 자연의 삶을 그린 생태 동화이며 아버지의 세계를 떠나 어른이 되는 성장의 이야기다. 또 북유럽의 신화성이 살아 있는 환상소설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동화에는 한 사람이 살며 겪게 되는 온갖 감정들이 넘실거린다. 사랑뿐 아니라 오해, 편견, 질투, 시기, 부정, 두려움의 감정까지 주인공들의 마음속에 출렁거린다. 이 동화를 읽은 아이들이라면 세상은 결코 부드럽지도 단순하지도 않다는 걸 자연스럽게 깨달을 것이다.

산적 아버지 마티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딸 로냐는 우연히 또래 남자아이 비르크를 만나게 된다. 아버지가 원수라고 생각하는 산적 보르카의 아들이다. 로냐는 처음에는 비르크를 더러운 악마라고 여겼고 자신은 정직한 산적이라고 생각했다. 저주하고 경쟁하던 둘은 서로 목숨을 구해준 후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그러는 사이 로냐는 산적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게 된다. 하지만 “옳지 않은 일을 한다 해도 변하지 않는다는 건 마티스가 로냐의 아빠고, 로냐는 아빠를 사랑”한다는 사실이었다. 급기야 두 산적 패거리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고, 아버지는 로냐의 친구 비르크를 볼모로 잡는다. 아빠를 무척 사랑했던 로냐는 “사람을 가지고 이러면 안 돼요. 아빠가 이러면 난 아빠 딸이 되고 싶지 않아요. 이 악당!”이라고 선언한다.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양날의 칼처럼 어쩌지 못한 채 움켜쥐는 순간들이 우리에게는 있다. 사랑과 오해 그리고 믿음과 배신은 늘 함께 찾아온다. 동화는 이런 인간의 본성을 은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사실을 보여주고 인정하고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다. 1954년 린드그렌이 를 썼을 때 아이들에게 너무 잔인한 동화라는 질책을 받았다. 그때 린드그렌은 이렇게 말했다. “오히려 아이들을 위험하지 않은 이야기에만 길들이려는 것이 슬프다.” 초등 5~6학년.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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