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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럼틀? 올라감틀? 누굴 위한 틀인가

놀이운동가이자 놀이터 디자이너인 편해문씨가 베이비트리 필진으로 합류합니다. 천편일률적인 기구에 어른 중심으로 만든 놀이터에 문제제기를 하고 아이들의 놀 권리에 대해 주장해온 편해문씨가 `놀이터 뒤집어 보기'라는 칼럼을 씁니다. 이 칼럼을 통해 편씨는 `아이들에게 놀이란 무엇인가?' `아이들이 좋아하고 가고싶은 놀이터는?'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서 더 나은 놀이터에 대한 방향성을 짚어봅니다. 이 칼럼을 통해 우리 아이들의 놀 권리, 놀 시간, 놀 공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미끄럼틀을 의심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능을 의심했고 마침내 그 이름을 의심했다. 어느 놀이터나 가도 흔한, 아이들도 좋아하는 놀이기구가 ‘미끄럼틀’이다. 영어로는 슬라이드(Slide)라고 하는데, 그 주된 기능이 미끄러지는 것이라 암시한다. 그러나 10여년 놀이터를 오가며 눈여겨본 바로는 아이들이 이 기구를 이용하는 모습은 사뭇 달랐다. 아이들의 몸짓과 행동은 그 이름에 정면으로 저항하고 도전하고 있었고, 그것을 이 기구의 가장 큰 재미로 삼고 있었다. 미끄럼틀 혹은 슬라이드라는 이름은 누가 어떻게 명명한 것일까.

» 미끄럼틀. 한겨레 자료 사진.

아이들이 살기에 참 불편한 세상이다. 길도, 학교도, 때로는 집도 그렇다. 어른들이 어른들을 위해 이 세상을 설계한 까닭이다. 이러한 설계와 디자인은 큰 반론에 부딪히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다. 세상은 아이들에게 그냥 받아들이며 살도록 강요한다. 아이들은 구조와 그 알맹이에 관심이 많은데, 구조와 알맹이가 처음부터 잘못 설계된 곳에서 지내야 하니 아이들이 답답해한다. 놀이터 또한 예외 없이 어른에게 친절하고 공손하게 만들어진다.

아이들을 도시에서 통제하기 어려운 골칫거리로 여겨 이 도시가 겨우 상상해낸 것이 우리네 놀이터다. 이 도시가 아이들에게 관심 가지고 있다는 알리바이 정도를 증명하는 공간으로 놀이터가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첫걸음을 잘못 디뎠다. 놀이터를 이용하지도 않을 어른들이 놀이터를 만들 때 가장 힘이 세다. 게다가 그들은 놀이터에 대단한 식견이 있다고 스스로 착각한다.

감히 얘기하건대, 놀이터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적어도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3년 정도는 놀아봐야 한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몸짓과 소리를 보고 듣고,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발산하는 온기와 생기, 자유의 공기를 느껴봐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터가 무엇인지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왜 놀이터에 오는지, 왜 놀이터에 올 수 없는지, 왜 놀이터에 왔다 서둘러 가야 하는지도 천착하고 싶어질 것이다.

미끄럼틀,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그 이름은 외부자, 관찰자, 어른의 시점에서 붙였다. 아이들은 놀이터에 들어서면 놀이터 주인인 척 거만을 떠는 조합놀이대 계단을 올라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온다. 그러나 곧 아이들은 미끄럼틀을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당연히 차진 맨발이 유리하다. 이것은 놀이터에서 해서는 안 되는 반사회적 행동이다. 그러나 전세계의 아이들은 오늘도 수없이 미끄럼틀을 기어오른다. 다행인 것은 아무도 말릴 수 없다는 점이다.

놀이기구 이름은 아이들을 길들인다. 이 놀이기구의 주요한 쓰임새와 재미로 보았을 때 그 이름은 ‘올라감틀’이 맞다. 이어지는 칼럼에서 놀이터에 관한 상식에 도전하려 한다. 여전히 ‘틀’이 문제이고 놀이란 ‘도전’이기 때문이다.

» 미끄럼틀. 한겨레 자료 사진.

아이들이 살기에 참 불편한 세상이다. 길도, 학교도, 때로는 집도 그렇다. 어른들이 어른들을 위해 이 세상을 설계한 까닭이다. 이러한 설계와 디자인은 큰 반론에 부딪히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다. 세상은 아이들에게 그냥 받아들이며 살도록 강요한다. 아이들은 구조와 그 알맹이에 관심이 많은데, 구조와 알맹이가 처음부터 잘못 설계된 곳에서 지내야 하니 아이들이 답답해한다. 놀이터 또한 예외 없이 어른에게 친절하고 공손하게 만들어진다.

아이들을 도시에서 통제하기 어려운 골칫거리로 여겨 이 도시가 겨우 상상해낸 것이 우리네 놀이터다. 이 도시가 아이들에게 관심 가지고 있다는 알리바이 정도를 증명하는 공간으로 놀이터가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첫걸음을 잘못 디뎠다. 놀이터를 이용하지도 않을 어른들이 놀이터를 만들 때 가장 힘이 세다. 게다가 그들은 놀이터에 대단한 식견이 있다고 스스로 착각한다.

감히 얘기하건대, 놀이터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적어도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3년 정도는 놀아봐야 한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몸짓과 소리를 보고 듣고,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발산하는 온기와 생기, 자유의 공기를 느껴봐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터가 무엇인지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왜 놀이터에 오는지, 왜 놀이터에 올 수 없는지, 왜 놀이터에 왔다 서둘러 가야 하는지도 천착하고 싶어질 것이다.

미끄럼틀,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그 이름은 외부자, 관찰자, 어른의 시점에서 붙였다. 아이들은 놀이터에 들어서면 놀이터 주인인 척 거만을 떠는 조합놀이대 계단을 올라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온다. 그러나 곧 아이들은 미끄럼틀을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당연히 차진 맨발이 유리하다. 이것은 놀이터에서 해서는 안 되는 반사회적 행동이다. 그러나 전세계의 아이들은 오늘도 수없이 미끄럼틀을 기어오른다. 다행인 것은 아무도 말릴 수 없다는 점이다.

놀이기구 이름은 아이들을 길들인다. 이 놀이기구의 주요한 쓰임새와 재미로 보았을 때 그 이름은 ‘올라감틀’이 맞다. 이어지는 칼럼에서 놀이터에 관한 상식에 도전하려 한다. 여전히 ‘틀’이 문제이고 놀이란 ‘도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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