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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말을, 말은 세계를 바꾼다

반성

함민복

늘 

강아지 만지고

손을 씻었다

내일부터는

손을 씻고

강아지를 만져야지

―〈날아라, 교실〉(사계절, 2015)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 1학년 120여명을 두 시간 동안 만나는 자리였다. 쉬는 시간에 여자아이 한 명이 다가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선생님 이야기 들으며 좋았어요.” 1학년에게 이런 칭찬을 다 듣다니, 기분이 좋아 슝 날아갈 것 같았다. 아이에게 조금 더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정말?” 하고 되물었다. “네, 선생님 이야기 들으면서 졸았어요.” ‘좋’았어요가 아니라 ‘졸’았어요였던 것!

그런데 왠지 통쾌했다. 이 아이는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 이야기를 잘 들으려고 했는데 졸아서 미안하다고. 미안(未安)은 남에게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럽다는 뜻이다. 편치 못함, 미안이 없으면 윤리 감각이 생겨날 수 없다. 불편한 것이 편한 것보다 윤리적인 건 그 때문이다.

강아지 만지고 손을 씻는데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마음은 어디서 온 마음일까. 강아지를 이뻐하는 내 마음도 같이 씻어내는 것 같아서. 그 마음이 거짓인 것만 같아서. 늘 해오던 일이었는데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걸 아는 때가 있다. 문득 깨달은 것을 반성적 사유로, 실천으로 밀고 나갈 때 그것은 진심을 증명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생각은 말을 바꾸고, 말은 세계를 바꾼다. 사는 대로 생각하다가 생각하는 대로 살자고 결심한 순간, 우리는 “늘”의 일상에서 “내일”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다. 

투명 유리 어항에 금붕어 두 마리를 기른 적 있다. 어느 날 금붕어들이 불편해 보이는 거다. 사생활이 숨김없이 노출되니 얼마나 마음이 안 좋을까. 바깥에 나가 돌멩이 두 개를 주워 와 깨끗이 씻은 다음 어항에 기대어 놓아 주었다. 그러기 무섭게 금붕어 두 마리가 그 사이로 쏙 숨어 들어갔다. 말 못하는 마음이 애타게 숨을 곳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돌멩이 하나만 넣어 주면 안 될까요?// 나도/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어요// 돌멩이 뒤에 숨어,// 아무에게도 나를/ 보여 주고 싶지 않을 때가 있어요”(이안, ‘금붕어’) ‘혼자 있고 싶은 날’, ‘아무에게도 나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날’, ‘아무런 말도 듣고 싶지 않은 날’은 언제였는지, 어떤 날인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그런 날은 식구들이 어떻게 해주면 좋은지 이야기해 보자. 팻말을 만들어도 좋다. 꼭꼭 숨고 싶은 날, 각자 자기 방문 앞에 걸어둘 수 있게.

2연에서 두 번 사용된 목적격 조사(을/를)는 특별하다. 2행(“손을”)에서는 강조로, 3행(“강아지를”)에서는 강아지를 받들어 감싸주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1연 “강아지” 다음엔 “를”이 없다. 그 전까진 내가 ‘갑’이고 강아지가 ‘을’이었던 것이다. 조사 하나 있고 없음의 차이가 이렇듯 크다. 이 시가 아름다운 건, 이렇게 말하는 시인의 존재 때문이다. 강아지를 대하는 마음이 이러한데 다른 것을 대하는 마음은 또 얼마나 극진할까 싶어서다. 당신에게 더 좋은 것을 줄 때 나도 아름다워진다. “동생 코 풀어 주고/ 얼굴 씻어 줬는데// 이상하다// 내 손이 보들보들 깨끗해졌네”(박성우, ‘손’) 하고 자기 손을 보며 놀라워하던 마음은 시간이 가도 지워지지 않고 선을 실천하는 굳은 바탕이 된다.

창가의 화분

권영상

창가에 놓인

화분에 

꽃이 피었다.

내가 보기 좋도록

안쪽으로 

돌려놓았다.

그러다가

다시 되돌려 놓았다.

꽃이 좋도록.

―〈구방아, 목욕 가자〉(사계절 2009)

미안해서

경종호

나비 한 마리 방 안으로 들어왔다.

꽃 한 송이 없는 방, 거울이

얼른 창밖 백일홍을 비춰 준다.

―〈천재 시인의 한글 연구〉(문학동네 2017)

바깥쪽을 향해 핀 꽃을 “내가 보기 좋도록” 안쪽으로 돌려놓는 마음은 내가 중심이 되기에 불편하다. 편치 못한, 미안함의 감수성이 나를 자기중심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나에게 좋은 일이 꽃에게는 힘겨운 노동을 부과하는 일이라는 것을 문득 깨닫고 화분을 다시 “꽃이 좋도록” 되돌려 놓는 마음은, 강아지 만지기 전에 손을 씻는 행위만큼 윤리적이다. 너무나 작은 일 같지만, 이 작음이야말로 얼마나 위대한 작음인가. “꽃 한 송이 없는 방”으로 들어온 나비에게 미안해서 “얼른 창밖 백일홍을 비춰” 주는 거울은 말 그대로 미안의 귀감이다.

함민복 시인의 첫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비룡소 2009) 맨 뒤에 실린 ‘이 시를 읽는 어린이들에게’의 첫 문장은 “미안합니다.”이다. 이 글 끝에 붙은 ‘추신’ 첫 문장 또한 “물고기들아, 미안하다.”로 되어 있다. 일상의 사소함에 연결된 편치 못한, 미안의 감수성이 반성적 사유와 실천을 가능케 하는 힘이다. 그러니 작은 것이 작은 것이 아니다. 먼지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어있다는 말은 도사연하는 수사가 아니라 일상에 실재하는 사건이다. “달리는 버스에서 쓴” 삐뚤빼뚤한 글씨는 어느 누군가의 글씨체이면서 “움직이는 지구에서 쓴/ 모든 글씨” 중 하나이기에 “지구 글씨체”가 된다. 

 글씨체

함민복

달리는 버스에서 쓴

글씨가 삐뚤빼뚤

낯선 이 글씨는

누구의 글씨체일까

버스체다

굽은 길체다

움직이는 지구에서 쓴

모든 글씨는 지구 글씨체다

―〈동시마중〉(2017년 1·2월호)

 이안/시인, 〈동시마중〉 편집위원 aninun@hanmail.net

반성

함민복

늘 

강아지 만지고

손을 씻었다

내일부터는

손을 씻고

강아지를 만져야지

―〈날아라, 교실〉(사계절, 2015)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 1학년 120여명을 두 시간 동안 만나는 자리였다. 쉬는 시간에 여자아이 한 명이 다가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선생님 이야기 들으며 좋았어요.” 1학년에게 이런 칭찬을 다 듣다니, 기분이 좋아 슝 날아갈 것 같았다. 아이에게 조금 더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정말?” 하고 되물었다. “네, 선생님 이야기 들으면서 졸았어요.” ‘좋’았어요가 아니라 ‘졸’았어요였던 것!

그런데 왠지 통쾌했다. 이 아이는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 이야기를 잘 들으려고 했는데 졸아서 미안하다고. 미안(未安)은 남에게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럽다는 뜻이다. 편치 못함, 미안이 없으면 윤리 감각이 생겨날 수 없다. 불편한 것이 편한 것보다 윤리적인 건 그 때문이다.

강아지 만지고 손을 씻는데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마음은 어디서 온 마음일까. 강아지를 이뻐하는 내 마음도 같이 씻어내는 것 같아서. 그 마음이 거짓인 것만 같아서. 늘 해오던 일이었는데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걸 아는 때가 있다. 문득 깨달은 것을 반성적 사유로, 실천으로 밀고 나갈 때 그것은 진심을 증명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생각은 말을 바꾸고, 말은 세계를 바꾼다. 사는 대로 생각하다가 생각하는 대로 살자고 결심한 순간, 우리는 “늘”의 일상에서 “내일”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다. 

투명 유리 어항에 금붕어 두 마리를 기른 적 있다. 어느 날 금붕어들이 불편해 보이는 거다. 사생활이 숨김없이 노출되니 얼마나 마음이 안 좋을까. 바깥에 나가 돌멩이 두 개를 주워 와 깨끗이 씻은 다음 어항에 기대어 놓아 주었다. 그러기 무섭게 금붕어 두 마리가 그 사이로 쏙 숨어 들어갔다. 말 못하는 마음이 애타게 숨을 곳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돌멩이 하나만 넣어 주면 안 될까요?// 나도/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어요// 돌멩이 뒤에 숨어,// 아무에게도 나를/ 보여 주고 싶지 않을 때가 있어요”(이안, ‘금붕어’) ‘혼자 있고 싶은 날’, ‘아무에게도 나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날’, ‘아무런 말도 듣고 싶지 않은 날’은 언제였는지, 어떤 날인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그런 날은 식구들이 어떻게 해주면 좋은지 이야기해 보자. 팻말을 만들어도 좋다. 꼭꼭 숨고 싶은 날, 각자 자기 방문 앞에 걸어둘 수 있게.

2연에서 두 번 사용된 목적격 조사(을/를)는 특별하다. 2행(“손을”)에서는 강조로, 3행(“강아지를”)에서는 강아지를 받들어 감싸주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1연 “강아지” 다음엔 “를”이 없다. 그 전까진 내가 ‘갑’이고 강아지가 ‘을’이었던 것이다. 조사 하나 있고 없음의 차이가 이렇듯 크다. 이 시가 아름다운 건, 이렇게 말하는 시인의 존재 때문이다. 강아지를 대하는 마음이 이러한데 다른 것을 대하는 마음은 또 얼마나 극진할까 싶어서다. 당신에게 더 좋은 것을 줄 때 나도 아름다워진다. “동생 코 풀어 주고/ 얼굴 씻어 줬는데// 이상하다// 내 손이 보들보들 깨끗해졌네”(박성우, ‘손’) 하고 자기 손을 보며 놀라워하던 마음은 시간이 가도 지워지지 않고 선을 실천하는 굳은 바탕이 된다.

창가의 화분

권영상

창가에 놓인

화분에 

꽃이 피었다.

내가 보기 좋도록

안쪽으로 

돌려놓았다.

그러다가

다시 되돌려 놓았다.

꽃이 좋도록.

―〈구방아, 목욕 가자〉(사계절 2009)

미안해서

경종호

나비 한 마리 방 안으로 들어왔다.

꽃 한 송이 없는 방, 거울이

얼른 창밖 백일홍을 비춰 준다.

―〈천재 시인의 한글 연구〉(문학동네 2017)

바깥쪽을 향해 핀 꽃을 “내가 보기 좋도록” 안쪽으로 돌려놓는 마음은 내가 중심이 되기에 불편하다. 편치 못한, 미안함의 감수성이 나를 자기중심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나에게 좋은 일이 꽃에게는 힘겨운 노동을 부과하는 일이라는 것을 문득 깨닫고 화분을 다시 “꽃이 좋도록” 되돌려 놓는 마음은, 강아지 만지기 전에 손을 씻는 행위만큼 윤리적이다. 너무나 작은 일 같지만, 이 작음이야말로 얼마나 위대한 작음인가. “꽃 한 송이 없는 방”으로 들어온 나비에게 미안해서 “얼른 창밖 백일홍을 비춰” 주는 거울은 말 그대로 미안의 귀감이다.

함민복 시인의 첫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비룡소 2009) 맨 뒤에 실린 ‘이 시를 읽는 어린이들에게’의 첫 문장은 “미안합니다.”이다. 이 글 끝에 붙은 ‘추신’ 첫 문장 또한 “물고기들아, 미안하다.”로 되어 있다. 일상의 사소함에 연결된 편치 못한, 미안의 감수성이 반성적 사유와 실천을 가능케 하는 힘이다. 그러니 작은 것이 작은 것이 아니다. 먼지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어있다는 말은 도사연하는 수사가 아니라 일상에 실재하는 사건이다. “달리는 버스에서 쓴” 삐뚤빼뚤한 글씨는 어느 누군가의 글씨체이면서 “움직이는 지구에서 쓴/ 모든 글씨” 중 하나이기에 “지구 글씨체”가 된다. 

 글씨체

함민복

달리는 버스에서 쓴

글씨가 삐뚤빼뚤

낯선 이 글씨는

누구의 글씨체일까

버스체다

굽은 길체다

움직이는 지구에서 쓴

모든 글씨는 지구 글씨체다

―〈동시마중〉(2017년 1·2월호)

 이안/시인, 〈동시마중〉 편집위원 anin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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